‘다문화 사회’를 넘어서 이제는 ‘다중언어 사회’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때입니다. 호주가 기본적으로 각국 이민자들로 형성된 국가인 만큼, 길거리나, 버스 안 같은 공공장소에서도 영어가 아닌 세계 각국의 언어를 듣는 것이 낯설지가 않은데요. 오늘은 호주 사회 내의 다양한 언어 사용 실태와, 점차 확대되는 아시안 언어 사용 현상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이수민 리포터 함께 합니다.
진행자: 호주가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건 사실 보편적인 명제인데요. 조금 더 와 닿게 생각을 해 보면, 주변에서도 정말 다양한 국적이 만나서 이뤄진 가족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가 있어요. 그쵸?
리포터: 그렇습니다. 제 주변 사례를 한번 예로 보면, 싱가폴 출신인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호주에 고등학교 때 유학을 와서 호주에서 학교를 나오고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일을 하다가, 거기서 브라질 출신의 아내를 만나서 함께 호주로 온 경우가 있거든요.
이 친구는 기본적으로 영어를 하고 부모님은 중국에서 건너온 분들이라 중국어도 하고요. 또 아내분의 경우 브라질 출신이니까 포르투갈어를 하죠. 그래서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랑은 포르투갈어, 친구들이랑은 영어, 할머니 할아버지랑은 중국어를 동시에 하는 거죠.
진행자: 맞아요, 지금 사례로 든 경우가 호주에서는 그리 낯선 사례는 아니죠. 길을 가다가 쇼핑몰 같은 곳에서도 생긴 건 서양 사람처럼 생겼는데 한국어나 중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는 경우도 많이 목격할 수 있는데요. 이런 경우엔 부모님 중 한 쪽이 해당 언어 모국어 사용자인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리포터: 네, 맞습니다. 특히나 아시아권 언어의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인데요. 실제로 호주는 유럽권 국가의 언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주류를 이루다가, 점차 아시안 언어 사용자가 늘어나는 일종의 ‘체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진행자: 그렇군요. 다양한 언어가 사용되는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은 아니지만, 사용되는 언어의 종류가 달라지고 있다는 거군요.
리포터: 그렇습니다. 먼저 언어 다양성 자체의 측면에서 보면, 호주 사회 내에서 장기적인 트렌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인데요, 인구학자인 글렌 카푸아노에 따르면, 지난 20년동안 호주 내에서 영어 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수가 200만 명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진행자: 그렇다면 영어를 제외하고 어느 언어 사용이 가장 많은지 궁금해 지는데요?
리포터: 네, 영어 외에는 차례대로 중국어인 만다린, 인도 언어인 푼자비, 이란과 중동 권역에서 사용하는 페르시아어와 다리, 그리고 힌디어 순으로 사용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 외에도 아랍어, 캔토니즈, 베트남어, 필리핀어 등의 사용자가 계속 증가하면서 기존의 주류 유럽 이민자 언어였던 이태리어나 그리스어 사용자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행자: 이민자들의 출신 국가가 다변화하고, 또 국가별로 이민자 유입 비중이 달라지면서 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리포터: 그렇다고 보입니다. 특히 이중에서도 단연 증가세가 두드러지는 것은 중국어인데요. 집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는 인구 수가 60만 명인 것으로 집계가 되는데, 지난 2011년에 비해 26만 명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진행자: 비율로 따지면 10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중국어 사용자가 70% 이상 증가한 셈이 되는데요. 어마어마한 성장세네요.
리포터: 그렇습니다. 전체 인구 분포도로 봤을 때 이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배경을 가진 인구의 비율은 전체의 21%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그러니까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5명 당 1명 꼴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셈이죠. 1996년의 15%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진행자: 5명 당 1명이면 엄청나네요. 한국의 경우를 떠올려 보면, 상상도 못할 비율인데요. 한국 사람인데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 있다고 잘 생각하지 않잖아요.
리포터: 그렇죠. 보통 한국사람처럼 안 생긴 외국인은 당연히 한국어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면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호주의 경우는 어느 언어가 모국어인지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그 갈래가 정말 다양하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아주 상이한 사회 구조를 보이고 있는 거죠.
진행자: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이민 인구 유입이 급증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최근 몇 십 년 사이 특히 두 나라에서 호주로 이민오는 비율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리포터: 네, 맞습니다. 약 반 세기 전인 1966년에는 인도와 중국을 합쳐서 두 나라에서 이민오는 비율이 1.6%에 불과했거든요. 당시 악명높았던 백호주의 정책이 아직 유효했던 사회적 맥락도 있었지만, 현재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수준이었는데, 70년대에 백호주의 정책이 폐지되고 인종에 제한 없이 이민이 가능해 지면서 2016년에는 15퍼센트 이상으로, 10배 가량 증가한 겁니다. 특히 호주 내 중국어 사용자의 경우 지난 20년 사이에 약 5배가 늘어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진행자: 이러한 통계 수치가 내포하는 의의는 무엇인가요?
리포터: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유럽에서 아시아로의 언어적 대이동이라는 트렌드를 형성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일 뿐아니라 이제는 ‘다언어 사회’라는 말이 적합하다는 분석입니다.
진행자: 백호주의 정책 전후로 언어사용에 있어서도 상이한 트렌드가 나타나는 거군요.
리포터: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인은, 보통 second-generation이라고 하는 이민 2세대들의 존재입니다. 부모님이 외국에서 이민을 온 이민 1세대고, 이 친구들은 호주에서 나고 자라 영어가 모국어이면서, 집에서는 부모님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인데요. 호주통계청에 따르면, 이러한 이민 2세대들의 경우에도 40세 이상의 경우에는 집에서 부모님과 유럽 언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훨씬 높고, 40세 이하는 아시안 국가 출신 부모님과 아시안 쪽 언어를 사용하는 비중이 더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진행자: 40년이면, 이 역시 대략 백호주의 정책 철폐 이전과 이후로 시기가 맞아 들어가네요.
리포터: 네 그렇죠.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이민2세대의 경우 영어만 잘하면 되지 하는 생각에 부모의 모국어를 굳이 가르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는데, 사회가 점차 글로벌화 되면서 ‘언어가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많이 퍼지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특히 아시안 이민자 부모들의 경우에는 동양권의 문화와 서양권의 문화를 자녀가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언어가 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두 언어, 많게는 세 언어를 동시에 가르치거나 하는 식으로 자녀를 ‘바이링구얼’ 로 만들기 위해서 신경을 많이 쓰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언어 교육 트렌드가 통계에도 반영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진행자: 이렇게 사회적인 구조가 변화해 가면 그에 맞게 관련된 교육이나 정책도 변화해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5명 중에 1명 꼴이라면 통역 서비스나 해당 언어로 국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정부가 투자를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지점에서 시사점이 있다면요?
리포터: 네, 정말 중요한 지적인데요. 이제 다문화 다언어는 호주의 사회적 특징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아직 이를 뒷받침할 제반 복지는 완전히 구동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운전면허시험 같은 경우에는 지금 뉴사우스웨일즈 주 같은 경우 영어 포함 총 10개 언어로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이런 점은 호주의 다언어적 현상을 잘 반영한 부분인데요. 반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법정에서 진술을 하거나 재판을 받을 경우, 통역 서비스가 법원에서 지원이 되긴 하는데, 통역사의 퀄리티가 해당 언어 사용 비율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소수 언어 사용자일수록 통역사 자체를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통역사가 배치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재판 통역 관련해 많은 문제가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이처럼 사회적 권리나 권한, 또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 있어서는 정책적인 세
심함과 현실 반영이 절실하다고 생각됩니다.
진행자: 네, 잘 알겠습니다. 이수민 리포터, 오늘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