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양중 PD: 매년 6월 시드니를 영화의 축제로 만드는 시드니 영화제.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영화제 창설 이후 최초로 온라인 영화제로 진행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 시드니 영화제 소식을 예년에 비해서는 많이 듣지 못했죠. 작년에는 한국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으로 시드니 영화제 최고 상인 ‘시드니 필름 프라이즈’를 수상하며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우리 영화의 위력을 보여줬고, 아카데미 상 쾌거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67회를 맞은 올해 영화제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 수상작으로 결정돼 호주 영화계와 학계 그리고 언론계에서는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한국의 디지털 문화 ‘먹방’에서 착안한 14분 짜리 단편 영화 ‘먹방’이 단편 영화 감독상을 받았는데요. 그런데 영화배우이기도 한 21살의 엘리자 스캔런 감독의 데뷔작 ‘먹방’은 인종차별주의에서 한국문화 도용까지 여러가지 논란을 낳았습니다. 자세한 소식 나혜인 프로듀서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나혜인 PD: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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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양중 PD: 네, 먼저 논란이 되고 있는 영화 제목이 우리 말 ‘먹방’이에요.
나혜인 PD: 그렇습니다. 영어로는 먹방이라고 하면 보통 binge-eating 폭식…이런 식으로 번역을 많이 하는데요. 이 영화 제목은 한국말 그대로 먹방입니다. 이 영화는 제 67회 시드니 영화제에서 $7000의 상금이 주어지는 로우번 마모우리언 상을 받았는데요. 바로 단편 영화 감독상입니다.
주양중 PD: 내용은요?
나혜인PD: 영화는 학교에서 아웃사이더인 10대 백인 소녀가 한국에서 지난 10여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던 온라인 먹방 트렌드에 매료되면서 성적으로 깨어난다는 내용입니다.
주양중 PD: 이 영화 감독은 나름 호주에서 좀 잘 알려진 여배우죠?
나혜인 PD: 네 엘리자 스캔런 감독인데요. 1999년 생, 21살의 젊은 여 배우이기도 합니다. 많은 호주 배우들의 데뷔작이죠, 엘리자 스캘런도 호주의 장수 드라마 홈 엔드 어웨이로 데뷔했는데요. 당시 스토커로 나왔던 타비타 포드 역을 맡았고요. 2018년 방영됐던 미국 HBO의 인기 미니 시리즈 Sharp Objects 에서도 문제 청소년 역을 잘 소화해내서 좋은 평가를 받아 헐리우드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여배우 중의 하나로 손 꼽혔습니다. 기존에는 사실 좀 어둡고 문제가 많은 역을 주로 소화했었는데 올 초에는 씨얼쌰 로넌, 엠마 왓슨 등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한 고전 영화 작은 아씨들(Little Women)에서 베쓰 역으로 캐스팅 되면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영화 배우로서의 앞길이 아주 창창한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연극에도 출연하고요. 시드니 영화제 수상작인 단편영화 ‘먹방’에서는 극본, 연출까지 담당하며 다재다능한 면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됩니다.주양중 PD: 이 영화 먹방…그런데 시드니 영화제 수상 직후 여러가지 논란에 휩 싸였다고요.
Eliza Scanlen attends Through Her Lens: on Monday, Nov. 4, 2019, in New York. (Photo by Evan Agostini/Invision/AP) Source: Invision
나혜인 PD: 그렇습니다. 스캔런 감독이 단편 영화 감독상을 받은 지 하루 만에 호주의 작가이자 배우인 미쉘 로우 씨가 트위터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는데요.“백인 소녀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도용하는 방법에 깊은 문제가 있고 백인 청소년이 흑인 소년을 심하게 공격하는 그림이 수상 후에 편집돼서 삭제 됐다”라며 “인종차별적이고 공격적인 것 뿐만 아니라 수상 후보작에 올랐던 다른 영화인들에게 부 정직하며 불공평하다”라고 비판했는데요.“호주의 영화 산업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파손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며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폭격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작업했던 본인이 아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아주 아주 조용하다”라며 “자신들에게 혜택이 되는 이런 인종차별적인 시스템을 영구화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는데요. “본인도 소수민족을 대표하는 배우로 역시 혜택을 받은게 있지만 이제는 뭔가를 해야 할 때”라며 “모두가 보고있다” 라고 했습니다.참고로 미쉘 로우 씨는 동양계 호주 배우이고요. 부모님이 홍콩계 그리고 말레이시아계입니다.미쉘 로우 씨의 트윗에 니나 오야마, 코리 첸, 모레블레싱 머투누어 등 호주 영화 극작가, 감독, 배우 등이 같이 동조하면서 시드니 영화제의 공식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주양중 PD: 먼저 스캔런 감독이 최고의 감독상을 받은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은 어떻습니까?
나혜인 PD: 네 심사위원단은 배우이자 제작자인 브라이언 브라운, 감독인 조지 밀러 그리고 소피 하이드 이렇게 세 사람인데요. 공교롭게도 다들 백인이고요. 심사위원단은 스캔런 감독의 시상직 직후 “신선한 목소리를 지닌 감독”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주양중 PD: 실제로 영화가 수상 후에 다시 편집이 됐나요?
나혜인 PD: 그렇습니다. 시드니 영화제 웹 사이트에도 편집 사실을 알리고 있는데요. 시드니 영화제에서 공개된 온라인 판이 6월 19일 그러니깐 수상 후가 되는데요. “영화제작자의 요청으로 의도하지 않은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거했다”라며 “시드니 영화제는 제작자의 요청과 우려를 존중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주양중 PD: 영화가 수상 후에 다시 편집된 것…그리고 그 내용이 인종차별적이었다…가벼운 문제가 아닌데요.
나혜인 PD: 네. 호주 영화, 텔레비전 및 라디오 학교에서 연출 과정을 가르치고 있는 펄 탄 선임 강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먹방을 보고 난 뒤 “친구들과 ‘화, 슬픔, 실망'에 대한 메세지를 개인적으로 주고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그 누구도 문화적인 역량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채 해당 작품이 수상 후보로 선정되고 수상까지 하게 된 것에 대해서 영화제와 심사위원들에게 깊이 실망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 문제가 영화제에 지적된 뒤 영화제와 제작자들이 빠르게 재 편집을 공모하고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 조용히 새로운 버젼을 올렸다”라며 “인종차별주의를 카페트 밑으로 쓸어넣기 위해 제작자들과 시드니 영화제가 엄청난 양의 일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번잡스러운 일들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양중 PD: 사태의 심각성을 보면 어떻게든 대응이 있어야겠는데요.
나혜인 PD: 네 그래서 결국 스캔런 감독이 나서서 공식 사과를 밝혔는데요. “영화를 만든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 위법행위를 일으킬 수 있는 작업을 창작한 것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라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스캔런 감독은 “인터넷 문화의 시대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어린 소녀의 여정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는지를 인지하는데 실패했다” 라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진다”라고 밝혔습니다. 스캔런 감독은 “영화가 6월 10일 부터 시드니 영화제에서 온라인으로 상영되며 흑인, 원주민 및 유색인종 공동체의 한 회원으로 부터 이런 지적을 받고 나서 문제를 깨닫게 됐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데 지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깊이 자신이 상처를 주고 있는지를 깨달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만든 제작사 팻 살몬 프로덕션은 스캔런 감독의 사과와는 별개로 따로 사과 성명서를 발표했는데요. “영화의 문제를 간과했다는 것이 부끄럽고 시스템적인 인종차별주의가 교활하고, 지속적이고, 그리고 깊이 호주와 백인 호주인 사이에 박혀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라고 반성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던 것은 “제작자들의 대부분이 백인이었기 때문이라며 유색인종 팀원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추후 진행되는 모든 영화 제작에 고용되는 직원들의 최소 30%를 흑인과 원주민, 유색인종으로 고용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주양중 PD: 그런데 시드니 영화제가 인종차별적이라는 것을 반박하는 기고문도 발표가 됐다고요?
나혜인 PD: 그렇습니다. 호주 영화인 27명이 지난 8일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기고문을 발표했는데요. ‘우리가 인종과 예술을 말하는 것이 뭔가 위험하게 삐딱하다’라는 제목이었고요. 마카우 출신의 시나리오작가 토리 아이레스, 원주민 출신 작가 라리사 베흐렌츠 등의 서명도 포함 돼 있었습니다. 내용은 호주에 시스템적인 인종 차별주의가 있다는 것은 믿지만 인종차별주의는 호주의 문화를 만드는 기관들을 잘 진단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건설적인 방향으로 다뤄져야하는데 최근에 나온 비판들은 업계를 망신주고 불 태우려고 하는 잘못된 반 역사적인 주장들이라는 건데요. 시드니 영화제가 백인 우월주의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운동가들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은 원주민과 문화적으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해 온 영화제의 오래된 역사를 고려하지 않고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해 분투해 온 호주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영화업계가 완전 백인들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이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호주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드라마 책임 프로듀서는 원주민 여성 샐리 라일리이며 넷플릭스는 최근 베트남계 호주 여성인 췌 민 루를 호주 프로그래밍 책임자로 임명한 것 등, 세상은 더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영화 먹방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들로만 보면 인종차별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동의할 수 없다”라며 영화를 보고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되려 이번 사태로 영화 제작가와 심사위원 그리고 시드니 영화제가 불공평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특히 시드니 영화제의 나션 무들리 위원장은 남아프리카 출신 흑인으로 아버지가 인종적으로 동기가 된 공격에 의해 살해된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이끄는 영화제가 백인 우월주의처럼 운영될 수 있겠냐고 언급했습니다.
주양중 PD: 글쎄요…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요? 하지만 그 장면이 인종차별적인 문제가 없이 떳떳했다면 굳이 삭제를 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기고문에 한국 문화에 대한 내용도 언급이 됐다면서요?
나혜인 PD: 네, “문화적으로 부적절하다는 것은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 사회가 판단해야 할 것이 아닌가?”라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영화 먹방과 관련해서는 백인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 세워 한국의 문화를 도용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앞서 배우 미쉘 로우 씨도 한국문화에 대한 도용을 언급했는데요. 이와 관련 시드니 대학 선임 강사이자 문화 비평가인 한국계 제인 박 박사는 “도용과 오마쥬 즉 경의 사이에는 아주 얆은 선이 있을 뿐”이라며,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는데요. “백인 소녀가 한국 먹방에 빠져서 어떻게 자기 걸로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문제가 없고, “한 소녀가 인터넷 현상으로 어떻게 성적으로 깨어나는 가는 영화로써 환상적인 전제”라고 말했습니다.하지만 제인 박 박사는 “유색인종 여성들이 영화에서 늘 보조적인 인물로 비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가들의 견해에 공감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호주의 한국계 코메디언인 찬우 최 씨도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먹방이 “인종차별적이지 않다”라며, 그렇다면 제목부터 한국식 먹방이 아닌 영어로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요. 그러면서 “한국 문화를 다루면서 백인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백인 우월주의라는 것은 백인은 한국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라며 “영화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들 보다 섭식장애 로비 단체가 더 맘이 상할 것”이라며 코메디언 다운 유머러스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호주국립대학 한국학과의 로날드 말리양카이 부교수는 장 시간의 근무시간, 다른 사람과 즐기면서 식사를 할 기회가 적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설명하며 먹방이 어떻게 탄생됐는지 그 배경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알렸는데요. 영화 먹방은 “분명히 먹방의 서양식 해석”이지만 “문화의 일부를 채택한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문화 도용에 이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주양중 PD: 네. 21살 신예 감독이 만든 14분 짜리 단편 영화가 남긴 많은 논란들…인종차별, 수상 후 편집 그리고 문화 도용까지…영화 먹방.. 깊이 있는 토론의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저희가 다음주 이 시간에도 관련을 좀 더 다뤄볼 시간이 준비돼 있죠?
나혜인 PD: 네 시드니 대학교의 제인 박 박사와 저희가 따로 연결해서 영화 먹방 그리고 영화업계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등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는 시간을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양중 PD: 나혜인 프로듀서 감사합니다.
나혜인 PD: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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