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김석환, 김인숙 부부 1977년 이민 직후 스미스 패밀리의 도움을 받은 것을 인연으로 45년째 후원 및 봉사 중
- 스미스 패밀리, 100년 전 맥주 한 잔 대신 소외된 아이들을 도우려고 했던 사업가들로 시작
- 선의의 행동을 익명으로 남기고자 가장 흔한 성인 ‘스미스’로 자처하며 ‘스미스 패밀리’ 탄생
- 김석환, 김인숙 부부 “기부는 부자만이 하는 것 아냐…노인 연금 받는 평범한 노인인 우리도 할 수 있는 일”
나혜인 피디: 연말연시가 되면 우리 주위의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한인사회에서는 지난 45년간 자선단체 스미스 패밀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를 배달하는 봉사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환경보호단체 진우회의 전코디네이터인 김석환 님과 아내 김인숙 님입니다. 어떤 인연으로 긴 시간 스미스 패밀리의 크리스마스 나눔에 동참하고 계신 건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이 함께할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석환 김인숙 선생님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김석환, 김인숙 님: 안녕하세요?
나혜인 피디: 두 분 먼저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성탄 보내셨나요?
김인숙 님: 네. 감사합니다.
김석환 님: 네 덕분에 잘 보냈습니다. 마침 멜버른에 사는 둘째 딸 가족이 올라와 함께 즐거운 성탄을 보냈습니다.
S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인터뷰 중인 김석환, 김인숙 부부 Credit: SBS Korean program
스미스 패밀리의 시작
나혜인 피디: 그러셨군요. 두 분께서는 시드니 지역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는 한인 사회의 환경보호단체 진우회 회원으로 오랜 시간 환경 정화 활동을 해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스미스 패밀리와도 45년… 매우 긴 인연이 있으시군요. 먼저 스미스 패밀리를 처음. 들어보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소개를 좀 해주시죠?
김석환 님: 제가 지난 15년 전인 스미스 패밀리 85주년 주주총회 행사에 초대받아서 참석했을 때에 처음으로 스미스 패밀리가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저는 그냥 통념적인 생각에 어떤 부유한 자선가 스미스 씨 가문이 재산을 헌납해 만들어진 자선 단체가 아닌가 이렇게 막연히 생각했는데…
나혜인 피디: 많은 분들이 사실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김석환 님: 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스미스 패밀리가 이제 100년 금년이 100년인데요. 네 19100년 전 1922년 개인 사업을 하는 5명의 동료가 출장으로 블루 마운틴을 거쳐 파라마타의 한 호텔에 머물며 호텔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호텔 근처에서 아이들이 장난감 하나 없이 쓸쓸히 있는 모습을 바라며 한 동료가 자신이 지금 마시고 있는 있던 맥주 한 병 값으로 장난감을 사서 저 아이들에게 주면 어떨까 하고 동료들에게 제안을 했는데 즉석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답니다. 그것을 계기로 다섯 명의 사업가들이 즉시 장난감과 과자들을 사서 칼링포드의 한 소년을 찾아가 전달했는데 그때가 마침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였습니다. 성탄 선물을 나눠주고 이제 나오는데 소년은 원장이 그 고마움에 그들의 이름을 물었답니다. 그 한 사람이 자기는 스미스라고 말했고 그래서 또 한 분에게 여쭤봤더니 그 양반도 스미스라고 그러고 그래서 다섯 분의 모두가 대답이 똑같이 스미스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나혜인 피디: 이게 본명이 아니신 거죠. 익명으로 남고 싶어서…
김석환 님: 그냥 스미스라고 그러면 한국의 김씨 성과 비슷하게…
나혜인 피디: 가장 흔한…
더 스미스 패밀리 과거 사진 Source: Supplied
이렇게 시작된 그 다섯 명이 결국 의기 투합해서 이왕 이렇게 시작했는데 이름도 스미스라고 했으니까 우리도 같이 스미스 패밀리로 해서 자선 단체로 설립을 등록을 했고 그것이 1923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년 100주년인데 금년에 12월 기준으로 스미스 패밀리가 다섯 명으로 시작한 후원자가 지금은 1만 5천 명에 가깝고, 정회원이요. 그리고 봉사자들이 5천 명 그러면 모두 한 2만 명이, 불우아동의 한 지금 호주에 이십만 명이나 되는데 연 이십만 명의 불우 아동을 지원하는 호주 최대의 아동 구호단체로 지금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혜인 피디: 한국으로 치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인 것 같아요.
김석환 님: 그렇죠.
45년 전, 호주 이민과 시작된 스미스 패밀리와의 인연
나혜인 피디: 아이들을 남몰래 도와주는 그런 단체인데요. 스미스 패밀리 그런데 두 분과는 어떻게 인연이 시작돼 온 건지 궁금합니다.
김인숙 님: 그것은 스미스 패밀리와 저희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저희가 호주로 이민 온 1977년도부터였습니다. 그때 저희는 한 살 세 살 다섯 살 먹은 세 자녀를 데리고 참 어느 쌀쌀한 6월 시드니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온 친지분의 주선으로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한국에서 아직 이민 짐이 오질 않아 집에는 정기 스톱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밥은 전기스토브에서 지어 먹긴 했지만 마땅히 올려놓고 먹을 상도 없고 해서 급작스럽게 구할 수 있는 거 사과 상자를 엎어놓고 신문지를 깔아놓고 아이들과 식사를 하곤 했죠. 그때 마침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는지 앞집에 사시는 호주 내외분들이 저희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좀 깜짝 놀라는 기색을 보았습니다.
그도 그 뒤 며칠 후에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체구가 아주 큰 호주인들이 가구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스미스 패무리에서 우리에게 보낸 가구를 배달 왔다며 어디에 놓는 게 좋으냐고 물었습니다.
이민 초창기 김석환, 김인숙 부부와 자녀들 Source: Supplied
김인숙 님: 엄청 놀랐죠.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바깥에는 아주 대형 트럭이 아파트 앞에 서 있었는데 그 안에는 아이들 침대 또 막내를 위한 유아 침대, 부부용 침대, 식탁, 의자 등 모든 가구들이 잔뜩 들어있고 그것들을 다 우리 아파트로 나르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너무 갑작스레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너무 고맙긴 하면서도 굉장히 당황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과 상자를 엎어놓고 식사를 하는 우리 가족을 본 앞집 이웃이 스미스 패밀리에게 가구를 신청해 준 것이었습니다.
김석환 님: 그래서 이제 그러한 인연으로 신세를 졌기 때문에 저는 그 당시에 타운홀 근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동료에게 스미스 패밀리라는 것이 뭐냐, 어디냐 그랬더니 바로 그 타운홀에서 가까운 윌리엄 스트리트 거상에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거길 찾아갔죠. 가서 이제 직원에게 그런 내용을 얘기를 하고 이렇게 신세를 졌으니 우리도 갚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신세 질 그런 형편은 아니다. 내가 지금 월급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래서 얼마만이라도 후원하고 싶다. 그랬더니 회원 가입서를 주면서 여기에 회원을 가입하면 연 백 불이 되고 그 다음에 분기별로 이제 후원금 저기 가면은 그거에 따라 자기 수준에 맞게 후원금을 내주면 되겠다고 해서 제가 그런 거를 했어요.
1977년 이민 올 당시 김석환 님의 여권 사진 Source: Supplied
김석환 님: 네. 회원과 동시에 후원자가 된 거죠. 지금 45년까지 잊지 않고 그 회원 납비는 매년 이제 백 불씩 내고 네 후원금은 애들 학기에 초가 되면 꼭 와요. 그러면 개네들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고 그랬었죠.
나혜인 피디: 그 당시에 스미스 패밀리는 이제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게 가구를 보내주는 그런 사업을 했었나 봐요?
김석환 님: 네. 그런 것도 이제 여러 분야로 해왔는데 많은 분야가 (단체들끼리) 중복성이 많으니까 스미스 패밀리는 이제 그런 거는 (다른) 쪽에 다 넘겨주고 전문성을 더 차리자 그러면 지금 제일 시급한 것이 불우 가정에 특히 이제 싱글 맘이 여러 가지 아이들을 데리고 고생하는 그 가정들 거기에 교육 프로그램을 써서 계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 해가지고 지금 본격적으로 이제 불우 아동 교육 프로그램에 전념하고 있는 거죠. 이렇게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이런 연유로 우리 호주 생활은 따뜻하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혜인 피디: 따뜻하셨겠지만 굉장히 의아한 마음도 많이 드셨을 것 같아요. 이렇게 도움을 주는 곳도 있다니 이런 생각도 들지 않으셨어요. 처음 이제 낯선 곳에 이민 오셔서…
김인숙 님: 맞습니다.
크리스마스 햄퍼 배달
나혜인 피디: 크리스마스 햄퍼 배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러면 그때부터 크리스마스 햄퍼 배달을 하신 건가요?
김석환 님: 아까 말씀드린 대로 1977년 6월에 이민을 와서 스미스 페이머리의 동을 하고 그거에 대해 이제 보답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동료 직원 중에 인도 친구가 있습니다. 우리 사무실에 한 20여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있는데, 동양인은 그 친구하고 저뿐이었습니다. 각별히 서로 이제 그 정을 나누고 있었는데 하루는 크리스마스 때 무슨 브로셔 같은 걸 가져오면서 보니까 스미스 패밀리의 햄퍼 배달에 대한 거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좀 알아봐 달라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도 관심 있다고 그래 가지고 그 친구 차로해서 거길 가서 첫 햄프를 받아서 같이 했던 그런 기억이 지금 납니다.
나혜인 피디: 크리스마스 햄퍼 배달 좀 설명을 해주신다면요. 어떤 걸 어디에 배달을 하시는 건가요? 1년에 한 번 하시는 건가요?
김석환 님: 네. 이제 1년에 한 번 하는데 회원들의 의무는 아니지만 후원자들이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요. 자기가 후원할 상품을 선택을 합니다. 스미스 패밀리 센터에 전달이 돼 가지고 거기에 맞게 구입을 해서 내 대신 구입을 해서 준비를 해주는 거죠. 그러면은 저희들이 가서, 지난번에 이제 집사람과 이렇게 해서 가서 그걸 받아 가지고… 그만큼 줘요. 그러면 거기에 카드도 있고 그래서 가면서 줄 아이들의 성명이니 모든 게 다 있으니까 거기다 이름을 써서 크리스마스카드를 같이 해서 가정 방문해 가지고 전해드리는 거 이제 그런 일 년에 한 번 있는 스미스 패밀리만의 독특한 방법이죠.
스미스 패밀리와 인터뷰를 하는 김석환, 김인숙 부부 Source: Supplied
김인숙 님: 많이 변했어요. 호주에 인터넷이 도입되기 전에는 매뉴얼로 배당받은 지역을 찾아 다시 지도를 우리가 다시 그려가면서 방문할 가구 자체를 이렇게 먼 곳에서부터 차차 가까운 곳까지 이 거리 순으로 순서를 정해서 배달을 거의 한 오후 늦게까지 하고 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비게이션을 이용해서 좀 배달하기가 훨씬 쉬워졌죠.
나혜인 피디: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 배달도 있으세요?
김석환 님: 아마 한 10여 년 전일 걸로 생각되는데요. 리버풀 쪽을 이제 할당을 받았어요. 근데 이제 그때는 리버풀이 그렇게 많이 개발이 안 됐던 지역이 있어요. 그 변두리에 특히 변두리에 원주민 마을이 있더라고요. 거기를 배당을 받아서 거기를 당기는데 한 가정을 이제 문을 두드리고 나오는데 그 엄마가 제 생각을 하면 싱글 맘 같아요. 지금 엄마가 혼자 세 자녀를 이렇게 안고, 나오는데 그 한 나이가 스물이 안 된 것 같아요.
나혜인 피디: 젊은 엄마…
김석환 님: 네 그것이 우선 마음에 뭉클하더라고요. 우선 근데 그 아이들의 표정은 절대 엄마의 그 표정과는 전혀 반대로 스미스 패밀리라니까 벌써 알고 그냥 눈이 반짝하면서 그냥 선물 보따리에 손을 내밀고 막 이제 기뻐하던 그 그 아이들의 눈동자가 아직도 생생하고 그리고 일면에 그 엄마의 표정이 지금도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 아픈 여인의 생각이 늘 마음에 그 한 구석에 남아 있어서 하나 좀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혜인 피디: 이렇게 선물 배달하실 때 좀 여러 가지 마음이 드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김인숙 님: 저희의 적은 수고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게 늘 마음 뿌듯하죠.
크리스마스 햄퍼 배달을 한 김인숙 님 Source: Supplied / Picasa
45년간 기부와 자원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은…
나혜인 피디: 사실 많은 분들이 좀 도움이 필요하신 우리 주변의 분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뭔가 좀 큰 결심을 해야 하고 헌신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에 좀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습니다. 좀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있을까요. 어떻습니까?
김석환 님: 저의 생각은 기부라는 것이 부자만 하는 것이라고 하는 통념은 깨는 게 좋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저 같은… 저도 부자가 아닙니다. 평범한 노인 연금을 받는 아주 평범한 노인입니다. 그런데도 할 수 있다는… 그 한 가지의 팁을 드린다면 커피 한 잔 값인 매 5불이면은 저는 지금 5불을 돼지 통장에다 넣고서 그걸로 이제 이렇게 모아오는데, 누구나 연금 받는 분들이 다 5불이라는 것은 커피 한 잔 먹는 값이거든요. 스미스 패밀리 초창기에 맥주 한 병 값을 샀듯이요. 그런 정신과 비슷하죠. 그렇게 해서 일 년 보면 한 천 오백 불 돼요 그 돈이면은요. 자기가 마음 놓고 하고 싶은데 한 10여 군데 기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마음도 편해지고 그래도 이웃을 따뜻한 정을 주었다는 것에 자기 자신이 보람을 또 느끼고 그러면서 한 해를 또 보내고 그런… 건강에도 좋고 그러지 않을까 이거는 이제 마음에 달려있는 건데요. 이 지금 듣고 계신 SBS 라디오를 듣고 계시는 만약 어떤 분이 라면은 내년부터라도 시작을 한번 해보시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권유드립니다.
나혜인 피디: 두 분께서는 사실 스미스 패밀리 봉사에 진우회의 봉사까지 정말 긴 시간 지역사회를 위해서 이 주변 이웃들을 위해서 봉사해 오셨습니다. 이민 오셔서, 45 년 전에 아이들 셋 키우시고 가족을 꾸리시는 것만으로도 좀 벅찬 순간들이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왜 이렇게 끊임없이 봉사를 해오시는 건가요?
김인숙 님: 네. 우리가 이민 와서 정착하여 보니 알게 모르게 이 사회에 많은 혜택을 누리고 누리게 되더라고요. 참 고마운 일이죠. 하나 또 일면 무언가 빚지고 사는 것 같은 부담감도 생기게 되더군요. 하여 우리도 무언가 이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우리 자녀들 또는 후손들은 어 자부심을 갖고 이사회에 더 잘 적응해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계속해서 일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김인숙 님과 자녀들 Source: Supplied
김석환 님: 저의 건강이 지금 같이 허락하는 한 저희 부부는 쭉 말씀드린 듯이 이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것을 큰 기프트로 다시 이 사회에 반납하는 리턴 투 소샤이어티라는 그런 모토로 계속 이러한 일을 변함없이 해 나가고자 합니다.
나혜인 피디: 끝으로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석환 님: 스미스 패밀리 정신은 이제 작은 것을 베푸는 이웃에 대한 배려와 후원하는 적지만 소수 인원이 한 명 두 멤버이고 퍼져 나간다면 이 이민사회가 변화를 가져올 따뜻한 사회로 변신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아직도 기부 문화가 익숙지 않은 우리 이민 한인 사이에 이 스미스 패밀리의 정신이 알려져 그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후원자들이 한 분 두 분 많아지면 우리 한인 사이에도 따뜻한 온기가 도는 웜 코리안 소사이어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나혜인 피디: 네 지난 45년간 자선단체 스미스 패밀리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상자 배달하는 봉사를 해오신 김석환 님과 아내 김인숙 선생님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욱더 연말 연시가 훈훈해진 것 같습니다.
김석환 님: 부족한 저희 부부를 이렇게 SBS에 불러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 SBS 라디오를 청취해 주시는 모든 분께서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혜인 피디: 두 분도 건강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