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인터뷰: 임상병리사 김민혜 씨 "두려워하지말고 도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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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어 호주에서도 자신의 전문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이민자들을 만나보는 시간. Pathology 업계에서 근무하는 김민혜 씨를 만나본다.


홍태경 PD: 오늘은 호주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 중인 김민혜 씨와 만나보겠습니다. 지금 연결돼 있는데요. 안녕하세요.

김민혜 씨: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홍: 네, 반갑습니다. 오늘 우선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요. 현재 일하시고 있는 곳 간단히 좀 소개 부탁드릴게요.

김: 저는 현재 라버티 파솔로지(Laverty Pathology)라는 회사에서 시니어 사이언티픽 오피서(senior scientific officer)로 근무를 하고 있는 김민혜라고 합니다.

홍: 그럼 임상병리사, 한국말로 하면 파솔로지라는 건 임상병리학 쪽이잖아요.

김: 한국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할 때는 일의 성질이 여기서도 똑같을지는 모르겠는데요. 지금 제가 현재 일하고 있는 부서는 히스톨로지(Histology)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클리닉이나 병원에서 조직 검사를 하게 되잖아요. 티슈(조직)나 모발도 포함이 되고요. 이런 것들을 채취를 해서 실험실로 보내게 되거든요.

저희가 그 이후 과정들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들을 프로세싱해서 슬라이드로 볼 수 있게 하는 작업들을 하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특별한 염색 과정이나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고요.

홍: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정기적인 피 검사를 한다거나 그런 검사를 했을 때 찾아가는 곳, 그곳에서 근무하고 계신 한국인 김민혜 임상병리사를 만나볼 수 있는 거죠?

김: 맞습니다. 피 검사하게 되면 혈액 샘플 같은 경우는 바이오 케미스트리(biochemistry)라는 부서로 가게 되고요., 그 다음에 유린 테스트(urine test 소변 검사) 같은 경우 그런 것들은 또 마이크로 바이올로지(micro biology) 부서로 가게 되고 그렇게 세분화되어 있고요. 실험실 안에서도 저희는 티슈 조직의 좀 세분화된 부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 그렇군요. 저희가 한국에서 오셔서 호주에서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시는 많은 분들을 만나보고 있는데 임상병리사로 근무하시는 분은 사실 한국분을 찾아뵙기가 쉽지가 않은 분야잖아요. 어떻게 이 일을 하게 되신 건가요?

김: 일단은 제가 한국에서 대학 졸업을 해서 학위를 가지고 있는데 저는 성균관대 유전공학과를 졸업했고요. 그런 다음에 아주대 의대 아나토미(해부학) 실험실에서 석사 과정에 있다가 제가 실험실 환경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제 개인적인 어떤 사정으로 호주에 오게 되고 여기에서 제가 이민을 한 후에 직업적인 것을 생각했을 때 전혀 다른 분야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았었어요. 전혀 제가 공부한 것과 관련 없는 것들을 새로 시작해서 하기보다는 제가 했던 것들을 좀 살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찾아보다 보니까 파솔로지가 좀 생활에 깊숙이 친근하게 들어와 있는 분야고 회사들이나 아니면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다 보니까 직업적인 기회가 더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쪽으로 제가 어떤 누구의 얘기를 듣거나 했다라기보다는 제 스스로 학위와 직업적 관련성을 가지고 계속 찾아봤던 것 같아요.

홍: 이렇게 본인이 그동안 한국에서 공부하셨던 걸 살려서 호주에서도 직업을 이어나가고자 하셨던 그 점이 굉장히 박수를 쳐드리고 싶은데요.

김: 감사합니다. 쉽지는 않았어요. 진짜로 주변에서 하는 분들도 없었고요. 전혀 없었고요. 그리고 현재 회사에도 한국인들이 정말 극히 적고 아주 드물고요. 저희 회사에 지금 랩 히스톨로지(histology) 부서에서는 거의 한국 사람이 한두 명 이렇게 있고요.

홍: 정말 대단한 여정을 거치셨을 것 같아요. 그 힘든 여정을 거치셨을 것 같은데 그렇게 직업을 찾기까지 어떤 과정이 필요했나요?

김: 이게 시간적으로 좀 오래 걸리기도 했고요. 그 다음에 그것을 찾고 제가 결정하기까지 어떤 시간적인 것들도 있었는데.

홍: 한국에서 하던 직업을 또 호주에서 찾기 위해서 어떤 분들은 공부를 다시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신 건가요?

김: 아니오. 그게 저한테는 되게 큰 도전이었어요. 저는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서 제가 이미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한국에서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호주에서 직업을 찾기 위한 이유로 또 공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시간적인 거나 아니면 물질적으로도 낭비가 좀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좀 경력적으로 접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어떻게든 관련된 일을 찾기 위해서 아주 작은 포지션이라고 할지라도 막 도전을 해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파솔로지 컬렉터(pathology collector)로 시작을 했고요. 파솔지 컬렉터야말로 가장 환자분들에게 가깝게 접근해 있는 역할이거든요. 저희 실험실로 샘플이 보내지기 전까지 직접 환자와 대응을 하면서 샘플을 채취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먼저 제가 접근을 해서 잡을 구했었어요. 그게 이제 발단이 돼서 그다음에 실험실로 다시 지원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거기에서 또 경력을 쌓고 진행이 돼 왔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그 파솔로지 컬렉터 잡을 잡을 때는 더글라스 핸리 모이어 파솔로지(Douglass Hanly Moir Pathology)라는 남반구에서 가장 큰 회사라고 해요. 거기서 다행히 채용 기회가 있어서 거기에서 어느 정도의 훈련 기간을 거치거든요. 거기에서 트레이닝을 시켜줘요. 처음에 일을 전혀 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 일정 기간의 트레이닝을 시켜주거든요.

그런 다음에 파솔로지 서티피케이트(pathology certificate)도 정부와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이수생들에게 그 파솔로지 서티피케이트 또한 주게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작이 어떻게 보면 수습생(apprehenticeship)을 통해서 하게 된 거죠. 그렇게 해서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고요. 그 파솔로지 콜렉터 잡을 구할 당시에는 딱히 그것과 관련된 직접적인 학위가 없었어도 충분히 잡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지금도 아마 그럴 거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홍: 굉장히 그러니까 접근 전략을 잘 세우신 거네요. 가장 문턱이 낮은 곳부터 접근을 해서 이제 본인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관련 분야로.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잡을 구하실 때 전혀 호주에서의 경력은 없으신 상태고 한국에서의 전공만으로 지원을 하신 거잖아요.

김: 호주에서 관련된 경력은 없었어요. 제가 이 파솔로지나 사이언스 쪽에 관련된 직업 경력은 여기서는 없었고요. 왜냐하면 처음부터 그렇게 잡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여기서 있는 동안에는 전혀 다른 분야의 생계를 위한 일들을 했었죠. 피부과에서 리셉셔니트로도 일을 했었고요. 그래도 어느 정도 이쪽과 관련된 쪽을 놓지 않으려고 관련된 쪽을 많이 찾아보고 구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전혀 너무 상관없는 일을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그래도 제가 연관성 있는 쪽으로 잡을 계속 구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홍: 그렇군요. 이렇게 호주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시면서 여러 가지 필요했던 과정 지금 들어보면 굉장히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관련된 분야에 있어서 계속 관심을 갖고 찾아보시는 것 이런 것도 굉장히 중요했던 자세인 것 같네요.

김: 네 맞아요. 1~2년 안에 이루어진 거는 아니었거든요.

홍: 그러면 얼마나 걸렸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 글쎄요. 한 한 5~6년은 걸리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주변에 파솔로지 일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제가 막 그 유니폼만 보고 막 가서 물어보고 그랬었어요. 어떻게 하면 되냐고…

홍: 그만큼의 열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김: 그때는 열정적으로 제가 접근했던 것 같아요.

홍: 그래서 지금의 김민혜 씨 그 자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호주에서 임상병리사로 지금 일하시고 계시지만 임상병리사가 되기 위해서 밟아야 할 필요한 과정이나 특별한 요건이 있는 건가요?

김: 네, 실제로 있고요. 저 같은 경우는 솔직히 되게 운 좋은 케이스이고 되게 특이한 케이스라고 사실은 보시면 되고요. 그러니까 호주 출신 친구들이 어떻게 이 잡을 얻게 되냐면 주로 시드니 대학교나 UTS, 맥쿼리, UNSW 이런 데서 메디컬 사이언스(Medical Science)라는 과목을 공부를 해요. 그런 다음에 주로 실험실에 지원을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제 동료들이 여기 호주에서 태어난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그 과정을 통해서 이렇게 잡을 처음에 얻게 되고요. 그런데 이민하는 분들도 사실은 기회가 열려 있는 게 제가 알기로 이게 부족직업군이에요. 잘 모르고 이쪽 분야로 많이 접촉을 하지 않아서 아마 알려지지 않은 걸 텐데 제가 알기로는 메디컬 사이언티픽 오피서(medical scientific officer) 아니면 테크니컬 오피서(technology officer) 그다음에 파솔로지 컬렉터(pathology collector) 이 모든 분야가 아마 제가 알기로는 부족 직업군에 속해 있을 거고요.

그런 분들 같은 경우는 에임스(AIMS)라고 만약에 해외에서 공부를 하신 경우 호주에 있는 데서 에임스(AIMS)라는 곳을 통해서 인정이 되면 답을 얻으실 수 있는 그 과정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홍: 그러니까 지금 이쪽 직업군을 원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직접 찾아보시면 다 길이 있다는 거 김민혜 씨가 보여주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한국과 호주에서 임상병리사 사실 직업군을 바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김민혜 씨가 한국에서는 유사한 전공만 하시고 이제 직업을 가지셨던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 업무 환경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시 아시는 점이 있을까요?

김: 업무 환경에 대한 차이… 뭐랄까요? 제가 한국에서 이쪽 정확하게 임상병리사로 일을 했다기보다는 그래서 정확하게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제가 봤을 때 호주에서의 어떤 회사 문화는 제가 일하는 실험실도 마찬가지지만 가족 문화를 되게 우선시해요. 그래서 저 같은 경우도 엄마이기 때문에 가족의 어떤 이벤트나 아니면 아이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 어떤 휴가를 내어주거나 그런 것들이 되게 자연스럽게 오픈되어 있고요.

그리고 업무 시간 같은 경우는 딱 정해진 업무 시간 딱 그 안에서 충분히 모든 업무가 이루어지면 정확하게 제 시간에 퇴근하실 수 있고 근무시간이 제가 알기로는 거의 모든 호주 회사 문화가 그럴 거지만 저희 또한 일이 아주 많을 때도 있어요.

특히나 저희가 코비드 같은 그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샘플들이 엄청 많이 들어올 때는 저희 실험실에서 그 모든 샘플들을 제한된 인원을 갖고 처리해야 되기 때문에요. 그러다 보니까 모든 직원들이 자진해서 그때는 회사에서 저희에게 푸시를 하기보다는 직원들이 모두 자진해서 오버타임을 하고 그랬었거든요.

문화적으로 이렇게 강요한다거나 아니면 아주 타이트하게 이루어진다기보다는 각자의 사정들이나 이런 것들을 모두 수용해 주면서 그 안에서 또 직원들은 열심히 주어진 근무들을 다 하고요. 그런 것들을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홍: 더 유연한 근무 환경과 이렇게 가족적인 환경이 있기 때문에 더 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김: 네 맞아요. 그래서 10년, 20년, 30년 일하신 직원분들이 되게 많아요. 오래 근무하신 분들이 되게 많아요.

홍: 지금 김민혜 씨께서는 얼마나 일하고 계신 거예요?

김: 저는 지금 이 분야에서는 10년 정도 일을 했고요. 라버티 회사 같은 경우는 토탈 치면 5년 넘게 근무를 했어요.

홍: 이렇게 원하시던 직업군에서 근무하고 계시니까요. 보람이 그만큼 있으실 것 같은데 또 그런 만큼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고요.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김: 일단 너무 뿌듯하기는 했어요. 여기서 많은 분들이 해외에서 이주하신 분들 같은 경우는 교육 과정을 다시 하셔야 되고 근데 그 과정이 또 쉽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저 같은 경우는 경력적으로 접근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잘 풀린 것에 대해서 되게 뿌듯함이 있고요.

그리고 이게 가능하다라는 걸 또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많은 분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고 왜냐하면 회사에서 고용 유연성이 있거든요. 그래서 딱 정해진 루트가 아니더라도 유연하게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사람들께서 많이 도전을 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이렇게 인터뷰에 응하게 된 것도 있고요.

그런데 또 힘든 점이라 하면 아무래도 제가 아이가 있다 보니까 육아를 하면서 일을 병행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좀 챌린지(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근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휴가적인 부분, 휴가를 요청하거나 아니면 아이가 아프거나 이럴 때 저희가 근무를 못하게 되는 시간들에 대해서 또 유연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착실하게 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홍: 이렇게 지나온 과정 살펴보시고 생각해 보셨을 때 참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참 잘했다 뿌듯하다’ 이런 점도 있고 또 ‘이런 부분은 아쉽다’ 하는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김: 아쉬운 부분은 왜 빨리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왜 좀 더 빨리 도전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이 생각을 많이 해요. 저도 걱정되고 왜냐하면 솔직히 이 분야가 많이 하는 분야가 아니고 제가 많이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제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비록 제가 열망이 있고 열정이 있어서 부딪혀서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저도 어느 정도 두려움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시간들 좀 더 제가 더 빨리 문을 두드리고 더 빨리 알아보고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사실은 해요.

홍: 지금 말씀 계속 듣다 보니까 임상병리사 현재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김민혜 씨 스토리는 정말 많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호주에서 같은 전공을 하고 계신 학생이나 아니면 한국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는 또 호주로 이민을 희망하고 있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좀 조언을 해주실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떤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 어차피 다른 나라로 와서 공부를 하거나 이주를 한다라는 것 자체가 되게 큰 도전이잖아요. 그런데 그 큰 도전을 함에 있어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결정할 수 있는 학과나 전공을 선택할 때 좀 더 도전 정신을 갖고 용감하게 선택을 하셨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요.

제가 그러지 못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격려의 용기의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도 있고요. 왜냐하면 부족직업군이 여러 분야가 있고 찾아보시면 사실은 한국에서 하시던 일이나 공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아니면 간접적으로라도 연결된 분야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단순히 이민이 쉬울 거라는 생각으로 접근을 하시기보다는 그것도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앞으로 여기 이민 후에 10년, 20년, 30년 후에 내가 나의 커리어 나의 미래를 이렇게 이루어 나가겠다라는 거를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시고 결정을 하시면 조금 더 이민 후에도 더 탄탄한 경력을 쌓아갈 수 있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그런 기초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두려워하시지 마시고 도전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홍: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민 오시는 많은 분들 또 공부를 하고 직업군을 찾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열정을 잃지 말고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꾸준히 찾아보면 문이 열릴 것이다…

김: 제가 바로 그런 케이스거든요. 제가 실제로 이뤘고.

홍: 몸소 보여주신 민혜 씨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하시는 일 잘 성장하실 수 있도록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너무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 같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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