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점점 더 많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지닌 사람들이 이율이 높고 위험성이 큰 대출 상품을 찾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도 ‘영끌’ 대출을 해야 할까요?
‘영끌’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로,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대출을 최대한 받아 투자를 한다고 할 때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명을 사용한 애쉬리스와 아내 다룬 씨는 호주에서 꿈에 그리던 집을 구입하기 위해서 ‘디포짓 부스트 론(deposit boost loan)’을 받았습니다. 이 대출을 이용해 구매자는 최저 2.2%의 보증금으로 집을 살 수 있습니다.
애쉬리스는 대출 이자가 꽤 높긴 하지만 대출이 없이는 집을 살 여력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애쉬리스는 “이 대출을 통해서 부동산 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됐고 평소에 감당할 수 없었던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환상적인 일이다”고 덧붙였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부동산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향후 5년간 120만 채의 주택을 새로 짓는다는 연방 정부의 목표에 따른 혜택을 얻으려면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절박한 구매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더 위험한 대출을 찾고, 대출 여력을 늘리려고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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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연구소의 매트 그루드노프 수석 경제학자는 호주에서 집값이 마지막으로 하락한 것은 몇 년 전 은행 규제 기관인 호주 건전성감독청(APRA)이 투자자에 대한 대출을 단속했을 때라고 설명합니다.
당시 호주 건전성감독청은 2014년 12월부터 투자자 대출의 성장률을 연간 10%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투자자 대출에 부과되는 이자가 증가했고 2017년 6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주택 가격은 4.3% 하락했습니다. 이 기간은 30년간 호주의 주택 가격 상승률이 가장 낮았던 때로 기록됐습니다.
그루드노프 경제학자는 “이 같은 거시적인 규제가 시행되며 투자자들이 시장에 몰려드는 속도를 늦췄고 주택 가격의 인상 속도도 늦출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2018년 4월부터 집값이 다시 오르고 호주 건전성감독청의 규제도 폐지됐는데요. 2021년 이후 투자자 대출은 다시 증가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루드노프는 장기적인 해결책으로 여겨지는 주택 공급 증대보다는 대출 관행을 바꾸는 것이 주택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독립 연구 센터의 피터 튤립 수석 경제학자는 투자자에 대한 대출 제한을 강화할 경우에 사용 가능한 투자 부동산의 수가 감소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임차인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옵션으로 담보 대출에 대한 접근성을 넓히는 방안을 제시하는데요. 일부 전문가들은 주택 소유주가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호주 건전성감독청의 규정을 완화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현재 호주 건전성감독청은 대출 기관이 잠재 고객을 평가할 때, 금리가 3% 인상되더라도 계속해서 대출금을 갚을 수 있을지를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규정을 낮출 경우 은행들이 잠재적인 대출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튤립 경제학자는 이 같은 3% 금리 인상 버퍼의 단점으로 고정 금리를 이용하는 대출자에게도 같은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는데요. 튤립은 규제 당국의 지시를 받지 않고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책임 있는 대출 조항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튤립 역시 대출 관행이 완화될 경우 사람들의 평균 대출액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는 경제성이 악화될 수 있음을 인정했는데요. 이런 이유 때문에 튤립은 “첫 번째 해결책은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루드노프 역시 사람들이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장기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경제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루드노프는 “이상하고 삐뚤어져 보이겠지만 일부 구매자나 대출자가 더 쉽게 대출을 받도록 도와주면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결국 사람들이 집을 더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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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호주에서 내 집 마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대출을 받기 힘들어지자 새로운 대출상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애쉬리스와 아내 다룬 씨는 2020년에 인도에서 호주로 왔는데요. 부부의 합산 소득은 연간 21만 달러에 달하지만 5% 보증금으로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65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부부는 애들레이드 도심과 가까운 곳에 방 3개짜리 주택을 구입하고 싶었지만 이 대출 금액으로는 원하는 집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부부는 ‘오은홈 디포짓 부스트 론(OwnHome deposit boost loan)’을 통해 대출액을 늘릴 수 있었고 애들레이드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86만 7,000달러를 주고 내 집을 장만했습니다.
은행들이 주택 담보대출을 줄 때 기본적으로는 집값의 20%를 보증금으로 마련하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집값의 20%를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요. 오은홈 디포짓 부스트 론은 집값의 20%에 해당하는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대출을 해줍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애쉬리스와 다룬 부부는 두 가지 빚을 갚아 나가게 됐는데요. 먼저 오은홈에 15년간 대출 이자 13%의 돈을 갚아야 하고, 별도의 대출기관에는 6.5%의 변동금리로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방 3개짜리 집을 86만 7,000달러에 산 후 부부가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상환액은 6,300달러에 달했습니다.
애쉬리스는 이율이 매우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다른 금융기관에서 재융자를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애쉬리스는 다행히도 집값이 상승했고 다른 금융 기관에서 재융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며 월 상환액이 5,100달러로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오은홈의 공동 창립자인 제임스 보우는 자사 상품이 엄마 아빠의 도움을 받기 힘든 주택 구매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며 “데이터에 따르면 주택 구매자의 3분의 2는 부모에게서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받아 보증금을 마련하거나 대출금을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든 호주인들이 부모의 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보우는 자사 고객의 절반 이상인 52%는 해외에서 온 이민 1세대라고 말했습니다.
보우는 “외국에 있는 집을 팔기도 하지만 호주에서 인지세를 감당하기에도 충분치 않은 경우가 있다”며 “금융 규율이 매우 강하고 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이 분명하지만 (이민자들은 호주에서) 처음부터 돈을 다시 모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소렌 파이낸셜의 몬수르 솔타니는 디파짓 부스트 론이 모든 구매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라며, 연방 정부의 주택 보증 제도에 접근하기 힘든 고소득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솔타니는 집값이 천천히 상승하는 지역의 구매자라면 저축을 계속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루드노프는 사람들이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를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경제 전반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 증가한다는 것은 금융 붕괴로 인해 우리 모두가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루드노프는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득이 주택 가격보다 더 빨리 상승해야 한다며 “해마다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