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미술 문외한에서 늦깎이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로 도전과 성취…"노력은 인정 받는다"
- 대표 수상작 'Language Hybridity(언어의 혼종성)'…이민자로서 겪은 언어적 혼란과 부정적 감정 예술로 승화
- 도자기와 디지털을 접목한 'Ceramic Stories' [digital connections]로 호주 미술계의 주목 받으며 독창적 입지 구축
- 아시안이민 예술가들이 호주 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탐구로 박사 논문 준비, 한국적 배경과 호주 문화가 융합된 전시 기획
'이달의 예술가 (Artist of the month)' 다문화 사회 호주에서 예술을 통해 한국 문화의 가치를 드높이는 호주 한인 예술가를 조명합니다.
유화정 PD: 예술을 통해 주류 사회와 소수민족의 간극을 좁히는 호주의 한인 예술가를 조명하는 시간입니다. 이달의 예술가 오늘은 호주 미술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한인 동포 큐레이터 김혜령 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혜령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유화정 PD: 먼저 청취자들께 간단한 자기소개와 인사 부탁드립니다.
김혜령 큐레이터: 안녕하세요. 김혜령입니다. 현재는 호주에서 엘레인 킴(Elaine Kim)이라는 영문 이름으로 호주 로컬 아티스트들과 전시회를 만들고 기획하는 아트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화정 PD: 이 큐레이터라는 단어가 제가 찾아보니까 ‘돌보다, 관리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urare'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보통 큐레이터를 작품과 관객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이라고 표현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김혜령 큐레이터: 큐레이터는 전시회 주제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며 전시 전체의 흐름과 배치를 설계하는데 이 과정에서 작품을 미술관에 어떻게 배치를 할지, 어떤 스토리 라인을 만들지, 그리고 작품의 아름다움과 의미성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를 고민합니다.
유화정 PD: 그러니까 작품들이 전시 공간에서 어떤 스토리를 만들고 또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가 바로 이 큐레이터의 손에 달려 있는 거네요.
Ceramic_Stories Credit: TONY TRAN
유화정 PD: 네 그렇군요. 특히 현대미술에서 큐레이터의 중요성은 어떤 점이라고 보시는지요?
김혜령 큐레이터: 큐레이터는 단순히 작품을 돌보는 것을 넘어서 현대 미술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가치를 확장하는 중요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대미술은 더욱 다채롭고 복잡해졌는데요.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들이 많아졌고 새로운 매체나 개념 예술이 등장하면서 작품에 대한 해석이 다양해졌습니다. 제가 이해한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은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이슈를 작품과 함께 전시회로 풀어내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유화정 PD: 현대미술의 흐름과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도 아주 중요한 역할이네요. 우리 김혜령 님은 올해 초 오스트레일리안 디자인 센터(Australian Design centre)에서 열린 도자기와 디지털을 접목한 전시 'Ceramic Stories' [digital connections]로 호주 미술계의 이목을 크게 집중시켰는데요. 이 전시는 어떻게 기획하게 되셨어요?
김혜령 큐레이터: 작년에 오스트레일리언 디자인 센터의 CEO인 리사 카힐(Lisa Cahill)의 초청으로 이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작성한 제 전시 제안서가 시티 오브 시드니(City of Sydney)에서 채택되어서 전시회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도자기를 통해 미술을 시작해서 이 기회를 통해서 도자기를 새롭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해석해 보고 싶었어요.
큐레이팅 한 'Ceramic Stories' [digital connections] 전시 Credit: TONY TRAN
김혜령 큐레이터: 디지털 분야는 저에게도 낯설어서 프로젝트 진행이 쉽지 않았는데요. 계속 도전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성과를 얻었고 제 노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많은 칭찬을 받아서 기뻤습니다. 디지털과 도자기 두 세계가 만나 색다른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저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도 좀 더 재밌고 독창적인 디지털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진행 중인데요. 아직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지만 계속하다 보면 점점 더 나아지겠죠 PD님? (웃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저는 너무너무 신나고 제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계속 자라나는 기분이 들어요.
유화정 PD: 잭크의 콩나무는 아니겠죠? (웃음) 예술가의 영감은 마르지 않는 샘인 것 같습니다. 김혜령 님은 큐레이터이기 전에 도자기 작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계신데요.
김혜령 큐레이터: 저는 TAFE에서 도자기를 배우며 호주에서 미대에 진학해서 도자기와 회화를 전공했는데요. 현재는 호주 도자기 그룹인 킬른잇 Kil.n.it의 레지던시 아티스트로서 다른 호주 로컬 도자기 작가들과 함께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참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 일을 시작하면서 작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항상 도자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개인 도자기 스튜디오에 가서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있습니다.
유화정 PD: 그러시군요. 신진 작가로서 여러 수상 경력도 갖고 계신데요. 요즘은 직접 자랑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라고 하죠.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상들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김혜령 큐레이터: 제가 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실기 수업에서는 항상 최고 점수 HD(High Distinction)을 받았었는데 어느 날 호주 학생이 교수님께 제가 영어가 부족한데 왜 그렇게 높은 점수를 받았냐고 불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일 가장 늦게까지 스튜디오에 남아서 작업하는 학생이 저 하나뿐이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는 "노력은 결국 인정받는다"라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Language Hybridity
이후에 이 주제를 확장해서 한지위에 Language Hybridity를 표현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은 제니버트 어워드에서 Highly Recommended 상을 받았습니다. 제 언어에 대한 혼란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예술로 승화되어서 인정받았다는 것은 정말 저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유화정 PD: 네 이렇게 차분히 말씀 주셨는데 이거야말로 인간 승리 아닌가요! 그런데 놀랍게도 미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삶을 살다가 호주에 와서 뒤늦게 미술에 입문하셨다고 요?
김혜령 큐레이터: 네 저는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다가 늦은 나이에 미술을 호주에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따라잡느라고 고생도 정말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뭘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너무 막막했죠. 그런데 꾸준히 하다 보니까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치 저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것 같았습니다.
미술을 통해 몰랐던 나 자신을 알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는데요. 제가 경험한 이 기쁨과 성취감을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꿈꾸시는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나이 때문에 망설여지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정말 저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중요한 건 얼마나 늦게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그 시작을 하느냐의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큐렝이팅 한 CeramiXR (Artist: Tika Robinson) Credit: Jack Golding
김혜령 큐레이터: 저는 호주에서 제가 큐레이터로 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더 지적이고 학문적인 미술과 시스템을 배우고 싶어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영어로 글쓰기 연습을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몇 달 만에 학교 내에 있는 쿠도스 갤러리에서 첫 큐레이팅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제가 가진 장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많은 큐레이터분들이 실질적인 미술 제작 경험이 좀 부족하신 경우가 있는데 저는 호주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작가로 활동한 덕분에 제 전시회에 참여하는 작가님들의 작업 과정과 그분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유화정 PD: 그렇겠죠 아무래도.
김혜령 큐레이터: 그래서 전시 준비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그분들이 필요한 부분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 덕분에 큐레이터로서 전시회를 준비할 때 작가님들에게 좀 더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실질적인 도움을 제안할 수 있어서 그 점이 가장 보람있었어요.
큐레이팅 한 Saywell Gallery 전시 Artist: Dr. Daniel Press Credit: Richard Trang
김혜령 큐레이터: 사실 제가 학문적 탐구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요. 긍정적인 경험들도 있지만 아시아인으로서 호주에서 겪은 부정적인 경험 역시 저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주 미술계에서 좀 더 전문적인 아시안 백그라운드 큐레이터로 활동하기 위해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노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아직 제가 이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지 아닐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씩 준비하면서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화정 PD: 앞으로 이 길을 잘 나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혜령 큐레이터: 감사합니다. 아시안 이민자들이 호주로 오면서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단순히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전통과 이야기들을 호주의 현대 미술과 자연스럽게 융합을 시키면서 새로운 미적 흐름을 형성해 왔습니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 출신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배경과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내면서 호주 미술계는 한층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화정 PD: 아시안 이민자 예술가들이 호주 미술계에 끼친 영향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어떤 것인가요?
김혜령 큐레이터: 예를 들어서 아시안 이민자 예술가들은 세대 간의 충돌, 정체성 혼란 그리고 언어적 장벽 같은 주제를 탐구하며 호주 사회 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요. 저 역시 작가로서 언어적 혼종성을 작품에 표현했던 것처럼 이러한 개인적 경험들은 호주 관객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시안 예술가들의 동양적 미학과 서양적 기법의 융합은 호주 미술계의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어요. 세밀한 공예 기술과 전통적 제작 방식이 현대적인 표현 방식과 만나면서 호주 미술은 경계를 넘어서고 더 확장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화정 PD: 한국 배경을 가진 아시안 여성 큐레이터로서 호주 미술계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 나가셨는지 김혜령 큐레이터님의 경험이 호주 한인 청소년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리라 믿습니다. 어떤 조언을 주실 수 있을까요?
김혜령 큐레이터: 아시안 여성 큐레이터로서 한국적 배경과 호주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융합된 전시회를 기획하고 그로 인해 문화적 교류와 이해가 증진될 때 큐레이터로서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예술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일은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감히 누군가를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최선의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하기보다는 맡은 일과 속한 커뮤니티가 나로 인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진정성 있는 마음과 함께 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깨달은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어떤 일을 하든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거예요. 마음의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성장과 발전이 멈춰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매 순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주어진 일에 진심을 다하면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Harmonies: Lunettes Art Exhibition Opening 큐레이터 김혜령 Credit: TONY TRAN
김혜령 큐레이터: 네 올해는 제가 큐레이팅하는 두 개의 전시회가 남아 있는데요. 현재 시드니 메릭빌에 위치한 세이웰 갤러리에서 11월 2일부터 열리는 "The Craft of Identity" 전시회를 큐레이팅 중입니다. 장인 정신을 가진 호주 공예 작가들과 함께 하는 전시회인데 한국인이신 전태림, 김우창 선생님들도 참여하시기 때문에 저에게는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입니다. 교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유화정 PD: 굉장히 반가운 이름들이세요. 전태림 작가, 김우창 도자기 작가님도 저희 이달에 예술가에서 모신 바 있는데요. 반갑습니다.
김혜령 큐레이터: 또한 시드니 시티 근처 서리힐에 위치한 루네트 아트 갤러리(Lunettes Art Gallery)에서는 11월 9일부터 호주 아티스트 니콰 블레이드(Nqa Blayed)의 개인전을 큐레이팅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공구 사용이나 건축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시라면 이 전시회를 매우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화정 PD: 이런 전시도 있군요?
김혜령 큐레이터: 네. 더불어서 2025년 신년에는 호주 로컬 아티스트들과 함께 "White"라는 주제의 전시회도 갤러리에서 준비 중인데요. 이미 멋진 작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매우 설레입니다.
유화정 PD: 우리 김혜령 님의 큐레이팅으로 흥미로운 전시 저도 기대됩니다. 오늘 인터뷰 마무리로 짧은 질문드려볼게요. 나에게 '좋은 일'이란?
SBS 한국어 프로그램 이달의 예술가 김혜령 큐레이터(왼쪽)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유화정 프로듀서
유화정 PD: 그 말씀 들으니 작은 행복 '소확행'을 찾으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로서 예술을 통해 새로운 연결과 감동을 만들어가는 길에 큰 성원 드립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혜령 큐레이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