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가 우리를 이해하는구나. 우리를 지켜봤구나.” ‘미나리’를 만든 정이삭 감독의 부모님이 영화를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한인 이민자 가정의 속 깊은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영화, 그 중심에 대배우 윤여정이 있습니다.
유화정 PD: 윤여정 선생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윤여정 배우: 예, 안녕하세요. 저 대배우가 아니고 노배우 요. 노배우..
유: (웃음) 네. 그런데 지금 캐나다 밴쿠버에 계시다고요. 미국이 아닌 밴쿠버에는 어떤 일로 가셨어요?
윤: 촬영하러 왔죠.
유: 또 영화 촬영 요?
윤: 영화 아니고 이건 애플 TV에서 하는 ‘파친코’라는 거 지금 찍으러 왔어요.
유: 아 ‘파친코’요? 한국에서는 ‘빠찡코’로... 호주에서도 아주 익숙한 책이에요. *‘파친코’가 호주 시드니 작가 페스티벌에 초청됐었거든요.
윤: 아 그래요?
유: 그러면 영화가 아니고 드라마를 찍으시는 거군요?
윤: 네. 드라마 요. 애플 TV에서 하는.
유: 헐리웃에 이어 미드 진출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여실히 증명해 주시네요. (웃음)
(*‘파친코’는 한국계 1.5세인 미국 작가 이민진의 장편소설로 재일동포 4대의 삶을 그렸다.)
유: 선생님, 요즘 '미나리'가, 온통 '미나리' 밭인 것 아시죠.
윤: 글쎄 말이에요..
유: 코로나 19 이 어려운 시대에 ‘미나리’ 낭보가 힐링을 주고 있습니다. 윤 선생님의 경우에는 전미 비평가들이 주는 연기상 21관왕의 신화를 달성하셨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 1위로도 예측되셨고요.
최근 다시 불거진 골든 글로브의 외국어 영화 논란에 수많은 영화인들이 아주 목소리 높여 항변하고 있습니다. ‘미나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요. 어쩌면 전화위복으로 오스카에 한발 더 다가간 셈이 아닐까요?
윤: 글쎄 저는 사실은 솔직히 한국 사람이고, 오스카고 골든 글로브고 테레비에서만 봤던 거고, 제가 이렇게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던 거라서, 뭐 그런 거에 대해서 주체가 무감한 게 아니라, 어떻게 제 느낌을 뭐 어떻게 제가 느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에 어떻게 반응해야 되는 지도 모르겠고, 제가 그냥 좀 어리둥절한 상태예요.
저는 한국서 낳고 자랐기 때문에, 저 하고 이 헐리웃이라는 데 하고는 너무너무 먼 데고, 먼 딴 나라 얘기였기 때문에 그걸 뭐 내가 뭘 탔다고 그러면, 글쎄 내가 뭘 탔대나 그러고.. 그런 그 상탭니다.유: 선생님은 호주와도 인연이 특별하세요. 2016년 브리즈번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박카스 레이디 ‘죽여주는 여자(The Bacchus lady, 이재용 감독)’로 여우 주연상을 타셨었나요..
Youn Yuh-Jung nabs 21st acting award for 'Minari'. Source: A24
윤: 여우 주연상이 아니고, 제가 그랜드 주리 상을 탔어요. 특별심사위원상이었던 거 같아요. 주연상 후보로 올랐다고 해서 갔는데, 주연상 후보에 안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나 아닌가 보다 그러고서 그냥 와인이나 마시자 그러고 와인 먹고 신발 다 벗어서 밑에다 놓고 있는데, 갑자기 절 불러 갖고 아주 기절했던 생각이 나요. (웃음)
유: 아. 그러셨어요. 맞아요. 제가 좀 착각을 했어요. 그 앞 전에 몬트리올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셨던 거죠?
윤: 네. 그랬대요.
유: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제목부터 강한데요. 그 이듬해에 호주한국영화제에 초청돼서 호주인들에게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었거든요. 그런데 그 해가 마침 데뷔 50주년이 되는 해였죠?
윤: 그래요? 글쎄 한꺼번에 다 해 갖고 지금 뭐... 안 쉬기로 했어요. 쉬기만 하면 너무너무 많아져 가지고요. 나이가 많아져 가지고. (웃음)
유: 저희 SBS Radio에는 68개의 language program이 있습니다. 호주는 이민자, 다문화 이민자 사회인만큼 ‘미나리’에 대한 공감대는 미국 이외 그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기대 공감대가 클 수밖에 없는데요. ‘미나리’ 호주 개봉이 2월 18일로 예정돼 있어요.
윤: 어 금방이네요?
유: 네. 영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미나리’ 이런 영화다~라고 콕 집어서 핵심적으로 알려 주신다면요?
윤: 제가 배우기 때문에, 콕 집어서 핵심적으로 그렇게 대학 교수가 아니라 잘 못해요. (웃음)
유: 그럼 짧게 하시고 싶으신 대로..
윤: 그냥 저기예요. 좀 다른 거는 이민 간 사람들의 가족 얘긴데, 다른 거는 제가 왜 이 시나리오를 좋아했냐면 요.
뭐 인종 차별이라든지 이런 거를 얘기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일곱 살 먹은 제 손자의 눈으로, 정말 깨끗하고 정직한 눈으로 그걸 바라보고, 그 부모들은 열심히 일했고, 그러는 거를 그린 영화라서 제가 깨끗하고 정직해서 좋아한 시나리오입니다.
Alan S. Kim and Yuh Jung Youn in “Minari. Source: A24
Alan S. Kim and Yuh Jung Youn in 'Minari'. Source: A24
유: “우리의 보물 같은 배우 윤여정을 알아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정이삭 감독의 말인데요. 배우 윤여정을 캐스팅한 이유가 뭘까요? 들어보셨어요?
윤: 아이작이 별로 초이스가 없었습니다. 그때, 얘기하자면. 왜냐하면 이게 무슨 상업 영화도 아니고, 아이작이 한국 배우를 많이 아는 것도 아니고, 잠깐 한국에 나와 있을 때였어요. 교수로. 그래서 아이작 친구가 저를 소개해서, 뭐 그냥 늙은 할머니이니까? 아마 그럴 거예요.
아이작은 물론 너무너무 나이스 한 사람이라 절대로 그렇게 얘기 안 하지만, 저가 꿰뚫어 보죠 세상을. 아이작은 초이스가 없었습니다. 절 쓸 수밖에 없었어요. (웃음)
유: 그런데 선생님, 그 힘들다는 독립영화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에 선뜻 응하신 이유는 뭔가요?
윤: 제가 좀 이렇게 바보 같은 데가 있어요. 물색없는 데가 있어요. 제가 그냥 어 누구 사람 하나 믿으면.. 내 친구가 내 친구 인아라는 애가 아이작은 믿을만하다 그러면 난 또 인아를 믿어요. 그래서 어떨 때는 당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래도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라고요.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믿지 않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인아(이인아 피디)를 믿어서 한 거였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이거 할 때 이런 주목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안 했고, 감히 제 생각에는 아이작을 돕자, 아이작을 도와야 되겠다, 이 시나리오를 어떻게 메이드 되게 해야겠다..
유: 살려 봐야겠다?
윤: 어어 그랬었어요.
유: 최근 ‘미나리’와 ‘기생충’의 만남이 장안의 화제가 됐습니다. “배우 윤여정 55년 연기 인생에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아카데미가 인정한 봉준호 감독의 칭찬을 받으셨는데요. ‘순자’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윤: 음 그건 봉준호 씨가 나이스 하게 얘기한 거고요. 봉준호 씨는 나이스 하게 얘기하죠 지금. 자기가 나를 안 쓰고 그랬으니까 미안해서 그렇게 얘기하는데 (웃음) 그건 아니고,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면요.
아이작이 너무 훌륭하게도, 어.. 감독에 두 타입이 있거든요. 이게 할머니 얘기니까 자기 할머니를 자꾸 기억하니까 그런 거를 요구하는 감독도 있고, 전혀 거기서 상관없이 하는 감독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전혀 상관없는 감독을 나는 좋아하거든요.
왜냐면 나는 흉내를 내고 해 봤자 거기에 매여 갖고 어떤 인물을 이렇게 창..창조까지는 아니지만 창조라고 그래야 되나…? 크리에이트 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작이 저한테 자유를 줬어요. 내가 물어봤어요 아이작한테. “니네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 있으면 내가 어떻게 해?”그랬더니 선생님 맘 대로 하시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아이작하고 둘이 만든 인물입니다.
유: 그러면 그렇게 크게, 영화 촬영하시면서, 할머니의 모습을 투영해야 된다 라는 그런 고민이나 그런 건 없으셨군요.
윤: 없었어요. 하나도 없었어요.
유: 아까 창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 윤선생님의 창조… 작이네요.
윤: 아우, 그렇게 말할 것 까지야.. 아이작하고 저하고 둘이 만든..유: ‘미나리’에 첫 낭보가 전해진 것이 지난해 2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회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쥐면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인정을 받으신 거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시상식에서 우셨다고요…
MINARI (2020, Lee Isaac Chung). Source: A24
윤: 아니 그렇게 울지는 않고, 제가 영화를 처음 봤어요 그때. 인터뷰를 하면 막 이렇게 이그제저레이트 돼 가지고 미치겠더라고. 영화를 보는데 전 제가 나오는 영화를 즐기지 못해요. 내가 뭘 잘 못했나? 왜 저기서 저렇게 했지? 그거 보느라고 아무 그 스토리도 관심도 없고 그래요.
그런데 막 사람들이 웃고 울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인아 내 친구한테 어디서 우냐 사람들이 그랬더니, 선생님만 안 울었어요 그러더라고. 그러니 그랬는데, 영화가 끝났어요. 끝났는데, 아이작이 호명이 돼서, 감독이니까, 무대로 나가는데 온 사람이 오디언스가 클래식 콘서트처럼 일어나서 스탠딩 오베이션을 펼치더라고요. 그 때 울었어요.
유: 영화 동료, 특히 감독들에 대한 애정이 아주 각별하신 것 같은데요. 앞서도 아이작 감독, 정이삭 감독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런 말씀 하셨는데, ‘미나리’ 바로 앞 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도 독립영화 였잖아요. 김초희 감독에게 또 그렇게 애정을 보이셨어요. 작품 무료 출연하셨죠?
윤: 애정이 아니고요. 걔가 이제 정말 빠졌어요. 이제 이제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땐데. 영화를 만드는데 2억을 갖고 만드는데 누가 출연을 하겠습니까 거기에. 2억을 갖고 만드는데. 그런데 할머니가 꼭 나와야지 된대요. 그런데 아는 애예요. 근데 그 걸 어떻게 안 해요. 그래서 한 거죠. 그런데 잘 만들었어요. 그것도 걔가 2억을 갖고.
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보다 속 정이 굉장히 깊으시네요..
윤: 네. 저 겉으로 보다는 안이 나아요. (웃음) 사람들이 나 무섭다고 그러고 뭐 까다롭다고 그러는데, 까다롭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내가 여긴 사람, 아 이 사람은 내 사람이다 하면은 저는 그냥.. 그건 우리 다 그렇지 않아요? 자기가 여긴 사람하고 다..?
유: 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이런 것이 기쁨이죠.
윤: 네 그렇게...
유: 선댄스 영화제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선댄스 시사회 Q&A 영상이 엄청난 미디어 장악할 만큼 화제가 됐는데요. 좌중을 압도하는 위트 넘치는 영어로 대배우의 아우라를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무대에서 팀을 포용하는 느낌? 영화를 만들면서 진짜 가족이 됐구나, 그 중심에 순자 할머니가 있었구나 라는 느낌을 아주 강하면서도 따뜻하게 받았습니다. 영화의 뒷얘기 좀 들려주세요.
윤: 영화의 뒷얘기는 밤을 새도 끝이 안 나죠. 우리는 같이 살았으니깐요. 같이 살았고. 아 그때는 제가.. 아 나는 그 영어 때문에 정말 창피해 죽겠는데, 그 이제 다 뭐 감독도 그렇고 스티븐 도 그렇고 영어를 다 잘하고,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걔 네는 영어가 네이티브니까. 그런데 이제 얘기가 길어지잖아요. 막 철학적으로 얘기하고 그러는데, 난 이제 빨리 무대에서 내려가고 싶고 그렇더라고. 그래 갖고 빨리 끝내느라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웃음)
유: 선생님, 아드님만 두 분 두셨죠? 사위 보실 일은 없으시겠는데요. 만약에 영화가 실제라면 가슴에 눈물 고이게 하는, 딸 가슴에 눈물 나게 하는 사위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 딸 가슴에? 딸을 울게 하는 사윗감요?
유: 네 영화에서 많이 울잖아요..
윤: 어 그렇지만 그거는 같이 잘 살아보자고 하는 거였지, 그 사위가 뭘 잘 못한 건 아니잖아요. 그 사위가. 그런 거 아니고 다르케 눈물 흘리게 하는 거는 용서할 수 없지만, 그거는 같이 잘 살아보려고, 아이들을 어떻게 자기보다 나은 미래를 좀 해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기 때문에 난 그거는.. 그 할머니 그 사위한테 뭐라고 그래요? 안 그러지.
Alan S. Kim and Yuh Jung Youn in 'Minari'. Source: Melissa Lukenbaugh/A24
유: 안 그러죠. 맞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미나리’ 트레일러 영상에, 아직 개봉되지 않은 국가들이 많으니까요, 다양한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의 공감 댓글이 그렇게 많이 달리는 걸 볼 수 있어요. 순자 할머니의 손자에게 하는 "프리티 보이, 프리티 보이” 하는 어설픈 영어가 손자에 대한 깊은 애정 담긴 콩글리쉬라는 그런 걸 이해한다고 해요. 한국어를 몰라도.
윤: 아 진짜요?
유: 네. 제가 하니까 그게 안 살아나는데요. 청취자분들을 위해서 그 대사 그 느낌으로 한 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윤: 아우 그러지 마요. 그런 거 시키지 마요. 나 노배우라고 그랬잖아요. 하지 마요. (웃음)
우리 한국 사람은 손자가 다 예쁘다 예쁘다 그러잖아요. 할머니가 그동안에 영어를 주워 들었겠죠, 프리티가 예쁘다는 건. 그러니까 그렇게 손자가 이뻐서 모든 게 다 이뻐서 “Pretty boy, Pretty boy” 하는데 걔가 너무 화내잖아. “Not pretty. I’m good looking!” 그러잖아요.
유: 해 주셨습니다. 지금 방금 (웃음) 감사합니다.
올해로 데뷔 55년 차이세요. 노배우라는 말씀을 계속해서 자꾸 하시는데요. 젊은 세대와 소통이 잘 되는 힙(hip)한 배우로 사랑받고 계십니다. 특히 정수리에 꽂히는 정문일침 어록은 인생 명언으로 새겨지고 있는데요.
“아프지 않고 아쉽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예순이 되어도 몰라. 다 처음 살아보는 인생인 걸? 나도 예순일곱은 처음이야.” 벌써 7년 전의 말씀 이세요.
윤: 아 그랬어요?
유화정 PD : 오늘 인터뷰 끝으로 호주 동포사회의 젊은이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윤여정 배우: 괜찮아요. 젊었을 때 많이 망가져도 되고, 많이 실패해도 되고 괜찮아요. 저도 많이 실패했고, 많이 아팠고, 많이 넘어지고 그랬어요.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 있잖아. 살아있으면 돼요. 괜찮아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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