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 Points
- 중국, 경기 둔화· 부동산 폭락으로 중산층 붕괴…부의 상징 피아노 교육 포기 속출
-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성장기에 들어서는 시점에는 예외 없이 클래식 열풍 불어
- 전 세계 피아노 절반 이상 중국에서 거래, 한 때 6천만명이 피아노 배웠으나 몰락 위기
- 한국도 저출산에 피아노 사라진다…중고 매매도 어려워 10만원 안팎내고 폐기 처분
좀 산다는 집엔 다 있는 '이것'.
최근 중국 경제가 붕괴되자 뜻밖에도 '이것'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외신이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한때 중국 중산층의 사회적 지위와 부의 상징이자 자녀 교육의 필수로 여겨졌던 '피아노'입니다.
팬데믹 이후 경기 둔화 부동산 폭락으로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피아노 교육을 포기하는 부모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출산 세계 역대 최저 기록을 자체 경신한 한국에서도 피아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 알아봅니다. 컬처 IN 유화정 프로듀서 함께 합니다.
박성일 PD(이하 진행자): 중국에서 한때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급격히 성장했던 피아노 산업이 최근 경제위기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로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몰락 위기에 처했다는 외신이 전해졌죠. 먼저 보도 내용부터 짚어보죠.
유화정 PD: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중산층 가구를 중심으로 한때 부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던 피아노 강습과 구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의 피아노 산업이 위기를 맞은 주요 원인은 팬데믹 이후 경기 둔화, 주택 가격 하락, 주식 시장 침체로 인한 소득 감소 압박이 꼽힌다. 소득 감소로 인해 불필요한 구매 줄이기에 나선 중국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고액인 피아노 구매를 꺼리기 시작했고, 피아노 강습마저 중단하고 나선 것입니다.
실제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 여성은 7살 딸을 매주 피아노 수업에 보내왔지만 남편의 수입이 중국 당국의 금융 산업 규제로 최근 2년 동안 반토막 나자 눈물을 머금고 피아노 교육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통신은 덧붙였습니다.
또 피아노 수요 부진에 중국 베이징의 한 피아노 판매 매장은 최근 일부 피아노 가격을 30%나 인하했지만 매장은 텅텅 빈 상태였다고 블룸버그는 전했습니다.
진행자: 심지어 중국의 지난해 피아노 매출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보다 더 나빴다면서요?
유화정 PD: 호주·뉴질랜드은행의 싱 자오펑 중국 수석 전략가는 자동차와 가전제품을 포함한 다른 내구재와 마찬가지로 피아노 판매도 소득 기대와 부의 효과에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부동산이 순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커 부동산 가격 하락이 중산층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중국 주택 가격이 5% 하락할 때마다 19조 위안의 부가 사라진다고 추정했습니다.
최근 이어진 중국 부동산 시장 부진과 증시 폭락에 따라 중산층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피아노 등 불필요한 고액 구매가 급감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진행자: 2010년 나온 통계로, 전 세계에서 10대의 피아노가 팔린다면 그중 6 대는 중국에서 거래됐다는 내용이 있네요. 이는 전 세계 피아노 판매의 절반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졌다는 건데요.
유화정 PD: 잘 아시다시피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경제가 급 성장하면서 자녀 교육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졌고 특히 피아노 교육 붐은 중산층 가정의 자녀의 필수 교양이 됐습니다.
2021년 기준 중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은 6000만명에 달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치로 이는 중국에서 피아노 시장이 가파르게 커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Charity Classical Concert by K@mel Credit: K@mel
유화정 PD: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으로 1970년대 말부터 40여 년간 1 가구 1자녀 정책을 펴오다 2016년에 이르러 1 가구 2자녀로 제한을 풀게 되는데요. 중국의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아울러 산아제한 정책이 폐지된 점 또한 피아노 보급의 상승을 이끈 주 요인이 됐습니다.
진행자: 중국은 1970년대 초에 마무리된 '문화혁명' 이후에서야 겨우 서양 음악이 전파됐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중국인의 피아노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유화정 PD:역사적으로 볼 때 한 국가가 성장기에 들어서는 시점에는 예외 없이 클래식 열풍이 불었다는 검증된 학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세기 초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신흥 중간계급이 몰렸던 곳이 바로 콘서트 홀이었고, 그 당시에는 집 안에 피아노가 있고 그것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상징이 됐던 것이죠.
중국의 경우 1960년대 문화 대혁명 당시만 해도 피아노는 부르주아 계급의 상징으로 여겨지면서 크게 비난을 받았다면 이후 경제 개혁, 개방 정책을 거치면서 중산층이 급증하면서 이를 기점으로 피아노는 중국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부를 상징하는 도구로 급부상했습니다. 중국의 클래식 붐은 중국의 경제와 국가적 위상을 반영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진행자: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문화생활 비용도 늘어난다는 것은 정설인데,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성장기에 들어서는 시점에는 예외 없이 클래식 열풍이 불었다는 점이 참 흥미롭네요.
유화정 PD: 사실 남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불과 30 ~4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피아노 학원이 성황을 이루었고 거실 한편에 들여놓은 피아노가 가정의 무한한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피아노 구매가 가장 높았던 시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으로 집계되는데요. 이 시기에는 한국 사회가 산업화와 경제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교육 수준이 상승하고 문화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특히 음악 교육이나 학습을 위해 피아노가 많이 구매되고, 또 한편으로는 피아노가 풍요와 부의 상징으로 피아노 구매 수요가 높아지면서 국내에 삼익, 영창 등 다수의 피아노 제조업체도 등장했습니다.
Bob Hawke’s treasure trove: Political mementos, art, furniture and diplomatic gifts set to go under the hammer Source: AAP
유화정 PD: 중국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은 국가가 클래식 육성에 매우 적극적이었다는 겁니다. 문화혁명 이전까지 클래식 음악을 금기시했던 중국이 국가 위상을 높이기 위한 소프트파워의 강화를 천명하면서 오히려 공격적으로 문화산업 육성정책을 펼친 것인데요.
여기저기 큰 도시마다 공연장이 건립되고,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조직됐습니다. 6000억원을 들여 2007년 완공한 국가대극원을 비롯 베이징에만 1500석 이상 대형 콘서트홀이 4개입니다.
진행자: 만리장성을 쌓은 나라답게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군요.
유화정 PD: 베이징의 국가대극원은 문화강국으로 부활하겠다는 중국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중국의 클래식 붐은 음악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음악 교육과 관련된 시장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피아노 교육이 중요한 사회적 교양으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피아노 및 음악 교육용 기기의 수요가 증가했고 이로 인해 음악 학원, 악기 판매 업체, 음반 시장 등과 같은 부가적인 경제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진행자: 중국의 클래식 붐에 맞춰 한국의 유명 피아노 브랜드가 중국으로 진출하기도 했죠. 그런데 중국 정부, 피아노 장려책의 일환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다면서요?
유화정 PD: 지난 수십 년 동안 클래식 피아노 고급 자격증을 보유한 학생은 대학 입학시험에서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때 피아노 전공자만 3000만명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피아노 수요가 늘면서 한국의 삼익 악기의 경우 중국 내 매장이 2018년 370곳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중국 정부의 국가적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피아노 교육 장려책의 성과는 실제 세계적인 콩쿠르 입상이라는 화려한 결과물을 쏟아내기도 했죠?
유화정 PD: 중국 클래식 시장의 변혁을 먼저 이끈 것은 윤디 리였습니다. 2016년 조성진이 21세로 한국인 최초 우승한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16년이나 앞선 2000년, 당시 18세 최연소의 나이로 우승을 거머쥔 중국 신예 피아니스트 윤디 리의 이름은 급속도로 퍼져나갔습니다.
윤디 리의 쇼팽 콩쿠르 우승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파급력을 불러일으켰는데, 클래식과 거리가 있었던 대중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앨범을 구매하고 공연에서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습니다. 탁월한 연주 실력에 꽃 미남 외모를 갖춘 윤디 리는 ‘클래식 스타’가 아닌 그냥 ‘스타’가 되었습니다.
진행자: 윤디 리를 이어 랑 랑, 유자 왕 등의 화려한 스타 피아니스트들이 등장했는데, 특히 랑 랑의 경우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며 클래식계의 슈퍼수타로 군림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화정 PD: 랑 랑은 윤디 리와 82년생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인데요. 탁월한 기교와 화려한 퍼포먼스를 지닌 랑 랑은 어디에 가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윤디 리의 활동이 주춤해지면서 '중국 대표 피아니스트' 자리는 자연스럽게 랑 랑에게 돌아갔습니다.
Chinese pianist Lang Lang performs during the fundraising gala organized by amfAR (The Foundation for AIDS Research) in Hong Kong 2016. (AP Photo/Kin Cheung) Credit: AP
유자왕의 뛰어난 테크닉에 대해 평론가들은 가히 초인적이며 그녀가 “두 개 이상의 손을 가졌을 것”이라고 평할 정돕니다.
진행자: 막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가적 차원의 전략에서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 음악가를 배출해 온 중국에서, 중산층의 붕괴가 마치 도미노처럼 피아노의 몰락을 가져온 최근의 실상을 자세히 짚어봤는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피아노 수요가 줄면서 멀쩡한 피아노를 폐기처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요. 이유가 뭘까요?
유화정 PD: 피아노 수요가 줄어드는 1차적인 원인은 저출산입니다. 최근 한국의 저출산율은 세계 역대 최저라는 암울한 기록을 남겼는데요.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3년 417만 명이던 전국 초등학생 수는 2024 올해 258만명으로 줄었습니다.
이처럼 피아노에 입문하는 초등학생 수가 저출생 가속화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데다 예체능보다는 대학 입시와 직결되는 국영수 등에 몰리면서 피아노 학원도 점차 줄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여기에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하면서 피아노가 소음 분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집 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기 어려워지면서 입지가 좁아졌다는 점도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 주택가에서 오래된 피아노를 폐기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는데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중고로 처분이 됐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어려워 대당 10만원 안팎의 처리비를 내고 폐기해야 하는 실상입니다.
진행자: 한때 중산층의 상징이자 자녀들의 필수 교양으로 여겨졌던 피아노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이제는 처리조차 어려운 천덕꾸러기가 됐다니 격세지감이 드네요. 집 안 한켠에 피아노가 위치해 있다면 오랜만에 소리 한번 내 보시면 어떨까 싶네요.